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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배론성지(천주교 원주 교구)

지리사랑 2019. 12. 11. 08:11

배론성지는 1801년 황사영 순교자가 머물며 백서를 썼던 곳이고, 1855년에는 사제양성을 위해 세워진 성 요셉신학교가 1866까지 신학교육을 했던 곳이며,또한 1861년 선종하신 한국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님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장주기 성인을 포함한 여러 순교자가 사셨던 거룩한 땅이다.

 

묵주 기도의 길(로사리오 길)

 마리아께서 예수님 잉태(하단 오른편)에서 부터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고통의 신비'와 예수님의 부활과 마리아에게 천상 모후관을 쒸우는 '영광의 신비' 


 최양업 신부님의 일대기가 조각되어 있는 조각공원 전경. 2004년 11월, 대성당 뒤편에 땀의 순교자인 최양업 신부의 거룩한 삶의 여정을 한 눈에 보고 묵상함과 동시에 산 이와 죽은 이가 한 자리에서 만나 기도할 수 있는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을 조성하였다.

순교자 최양업(崔良業) 토마스(1821-1861년) 신부는 두 번째 한국인 사제로서, 세례명은 토마스. 양업(良業)은 아명(兒名)이고 관명(冠名)은 정구(鼎九), 본관은 경주, 충청도 다락골[일명 대래골, 현 靑陽郡 化成面 禮岩里]에서 출생하였다. 1836년초 입국에 성공한 모방(Maubant, 羅伯多祿) 신부는 즉시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위해 신학생 선발에 착수했는데, 맨 먼저 16살이었던 최양업이 발탁되었고,이어 최방제(崔方濟)와 김대건이 발탁되었다.그리하여 마카오에서 1842년까지 공부를 계속히였다.

1849년 4월 15일 강남교구장 마레스카(Maresca) 주교로부터 숙원인 사제품을 받고 동료 김대건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인 신부가 되었다. 1861년 6월 식중독과 과로에 의한 장티부스 발병으로 경상도 문경(聞慶)에서 쓰러져 보름 만에 사망하였다.

 조각공원 내에는 고 탁희성 화백의 작품을 오석에 새긴 30개의 조각 작품으로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담고 있고, 그 내부는 납골 봉안소로 사용하고 있다.

 

 

 예수님의 모습

 중앙 제대



 

 황사영은 처삼촌 정약종이 들려준 천주학에 매료되어 1790년에 이승훈에게서 천주교 서적을 얻어 보았고 천주교 신앙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한 후 알렉시오(Alexius) 라는 세례명으로 영세 입교하였다.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박해를 피해 배론으로 피신하여 황심, 김한빈, 송재기로부터 박해의 진행사항을 들었고 교회의 재건방안을 생각하거나 글 쓰는 일로 소일하면서, 그 해 8월 23일 황심으로부터 박해의 소식과 주문모 신부의 순교사실을 듣고는 박해의 경과와 교회 재건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비단에 적어 북경주교에게 전달하려고 백서를 쓰기 시작하다가, 9월 29일 체포되었으며 백서는 압수되었다.

  토굴은 황사영(알렉시오)순교자의 백서가 쓰여진 장소로서 1988년 서울대 이원순 교수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현재 백서는 바티칸 박물관 내 선교민속 박물관에 소장 · 전시되어 있다.


 


 한국 최초의 신학교, 조선교구 교구장 직무대행 메스트로 신부1855년배론에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1978년 현 위치에 복원된 성 요셉 배론 신학교는  2001년 3월 2일 배론 성지 일대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된 후 2003년 재복원되었다.

 



 


 

2019.12.10